2코스 가볼만한 곳 2017-11-09T17:24:22+00:00

노루벌

갑천과 두계천의 합류지점이 있던 봉곡동 야실마을 앞을 흐르는 갑천은 흑석동 물안리를 지나 구봉산을 향해 흐른다. 정면에는 구봉산을 만나면서 고리모양으로 휘돌아 내려가는 곳이 바로 노루벌이다. 노루벌이라는 이름은 봉긋한 산세가 위에서 내려다보면 아기노루가 엄마노루를 쫓아서 뛰는 형상으로 노루가 노는 벌판이라고 해서 노루벌이라고 불리우고 있다. 노루벌에서 올려다보는 구봉산은 대전팔경 중에 구봉산 단풍이 있을 만큼 아름다운 곳이며 아홉개의 봉우리가 있는 산이라는 뜻으로 모습이 하도 기이하여 신선들이 놀고 갔다는 전설이 있을 만큼 아름다운 산이다. 또한 노루벌은 갑천에서 대표적인 사행천을 보여주는 곳이다. 사행천이란 강이 직선화되어 흐르는 것이 아닌 마치 뱀처럼 구불구불 S자로 끼고 흘러가는 것을 말한다.

관찰포인트 : 노루벌에서는 8월말부터 9월 중순까지 늦반딧불이를 관찰 할 수 있는 곳이다. 노루벌 체험의 백미는 장평유원지에서 상보안 유원지까지 약 2.2km를 하천을 따라 직접 걸어보는 것이다. 갑천에서 가장 넓은 자갈톱을 가지고 있어 물수제비를 뜨기도 해보고 북쪽으로 바라다 보이는 구봉산을 배경으로 걸으며 자연의 참 의미를 느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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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소: 대전 서구 흑석동 노루벌 2길

상보안유원지

캠핑하기 좋아 많은 캠핑족들이 찾는 무료 유원지인 상보안유원지는 화장실 및 취사대도 잘 갖추어져 있다. ?맑은 물과함께 시원한 자연에 둘러쌓여 있어 도심근처에서 자연을 만끽할 수 있는 공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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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소: 대전광역시 서구 흑석동 738

흑석유원지

갑천 수변을 따라 조성된 갑천누리길 구간으로 장태산휴양림과 더불어 관광객과 캠핑족들이 많이 찾는 곳이다. 물놀이, 다슬기 잡기 등 생태체험이 가능한 가족 휴식공간으로 조성었으며 보안 및 체육시설 등이 위치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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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소: 대전광역시 서구 흑석동 433-7

정뱅이 마을

미리미의 동쪽에 있는 마을을 정뱅이 혹은 정방이 마을이라 한다. 이 마을의 유래에 대해서는 백제를 멸망시킨 당나라의 소정방이 이곳에 진을 치고 싸웠다고 해서 붙여졌다는 것인데, 당시 동네사람들이 성을 쌓는데 강제 동원되어 노역하였다고 한다. 용촌동 산 14번에는 동나무로 지정된 느티나무 두 그루가 있는데 이를 정뱅이 느티나무라 한다. 이 나무의 수령은 약 300년으로 정뱅이 마을 왼쪽에 자리하여 위용을 자랑하고 있다. 정뱅이 마을 앞쪽에 펼쳐있는 들은 정뱅이들 혹은 정방평이라 하고, 이 정방들에 농수를 대어주는 갑천 상류에 있는 보를 정방보라고 한다. 이 정뱅이 마을을 기점으로 대둔산에서 내려오는 벌곡천과 계룡산에서 내려오는 두계천이 합류하여 갑천이 된다. 지난 2008년 살고 싶은 도시만들기 시범사업에 선정돼 지난 2009년 녹색체험마을로 탈바꿈했다. 마을의 역사와 애환이 담긴 특색있는 벽화담장을 감상할 수 있다. 독특한 모습의 담장들로 항아리나 그릇 타일 조각을 이용한 벽화 담장을 비롯해 통나무를 쌓아 올린 담장, 먹을 이용한 소나무 벽화 등 다양한 재료를 이용한 벽화 담장은 마치 미술전시장을 연상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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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소: 대전광역시 서구 흑석동 749

괴곡동 느티나무

· 지정종목: 천연기념물 제 545호  · 지정일: 2013년 07월 17일

· 면적: 문화재구역(389㎡) / 보호구역(4,687㎡)


괴곡동 입구에는 천연기념물 제 545호 국가지정 문화재로 지정된 느티나무가 있다. 수고(樹高)가 16m에 이르고, 수령(樹齡)은 700여 년이 되었으며, 수형(樹形)이 매우 아름답다. 또 마을에서 오랫동안 수호목(守護木)으로 여겨, 매년 칠월칠석이면 칠석제(七夕祭)를 올릴 만큼 주민들의 정신적 구심점 역할을 하였다. 옛날엔 이 느티나무 아래에 도랑이 흐르고 있었는데 이 마을을 지나던 옹기장수가 이 나무 아래에서 그네를 타다가 도랑에 풍덩 빠져서 이 도랑을‘어풍덩’이라고 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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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소: 대전광역시 서구 괴곡동 985

흑석산성

· 지정종목: 시도기념물  · 지정번호: 대전기념물 제 15호  · 지정일: 1990년 05월 28일

· 시대: 삼국시대  · 크기: 23.210㎡


흑석동역의 서쪽에 있는 해발 197m의 고무래봉 정상부에 있는 산성이다. 산성의 남쪽을 제외한 3면은 두마천으로 둘러져 있고, 경사면은 매우 가파르다. 호남선철도와 대전에서 연산에 이르는 도로가 내려다보이는데 당시의 길목을 감시할 목적에서 쌓은 것으로 보인다.

백제시대의 산성으로 산봉우리를 둘러싼 테뫼식(산정식)산성이다. 성벽은 무너졌으나 테두리는 뚜렸하게 확인되며 둘레는 약 540m이다. 성은 외벽만 돌로 쌓고 안쪽은 흙과 잡석을 섞어 채우는 방법으로 만들어진 석축산성이다. 서쪽산 정상 부위의 깍아내린 듯한 가파른 지형은 산록에 걸쳐 쌓아진 석축과 함께 두겹의 성처럼 보이기도 한다. 현재 통로로 이용되고 있는 곳이 남문터로 추정되며 문 폭은 10여m에 달한다. 성내의 동서 쪽에 넓은 평지가 있어 건물터로 추정된다. 서벽내의 평지에서는 뚜껑그릇 등 백제시대 토기편과 다양한 무늬의 기와편이 발견되었다.

속칭 ‘밀암산성(密岩山城)’ 이라고도 하는데, [삼국사기]를 비롯한 사서(史書)에는 ‘진현성 (眞峴城)’ 이란 명칭이 자주 나타나고 있다. 즉, 백제가 나당연합군에게 멸망당한 이후 백제의 왕통을 회복하기 위해 모여든 백제부흥군의 활약과 연관되어 나타나고 있다. 이와 관련된 사료들을 살펴보면 진현성은 그 위치가 옛 진잠 부근에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옛 진잠은 현재 대전광역시 서구에 해당된다. 이 진현성은 나당연합군과 백제부흥군과의 치열한 싸움터로 기록되어 있다. 나당군은 이 진현성을 함락시키고서야 ‘드디어 신라운량지로(新羅運糧之路)를 개통하였다.’고 하고 있음으로 보아 진현성의 전략적 중요성이 짐작된다. 그런데 기록에는 진현성의 위치가 강과 접하여 높고 험준하다고 하였다. 이는 흑석동 산성의 입지 여건과 비슷한 면을 보이고 있어, 이 흑석동산성을 진현성으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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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소: 대전광역시 서구 봉곡동 산26-1

김여온의 묘

· 지정종목: 문화재자료 제 16호  · 지정일: 1989년 03월 18일

· 시대: 조선시대


김여온(1550-1592)의 자는 경보(敬甫), 호는 석은(石隱)이며 본관은 김해이다. 금녕군(金寧君) 목경(牧卿)의 후예이며 임진왜란때 의병의 선봉장을 지낸 순국지사이다. 1550년에 공주 계룡면 노포리에서 출생하였다. 어려서부터 도량이 커서 작은 일에 구애되지 않았고, 재주가 많았는데 충효를 행동의 기본으로 삼았다.

의영고 주부(義盈庫 主簿)를 거쳐 한림원 한림으로 있다가 임진왜란을 맞았다. 이에 중봉 조헌(重峰 趙憲), 양응춘(楊應春), 정자방(鄭自防)등과 함께 의병의 선봉장으로 전쟁에 참여하였다. 청주에서 왜병을 물리친 김여온은 금산으로 진격하여 연곤평에서 전투하다 조헌과 함께 전사하였으니 임진왜란이 일어난 해인 1592년(선조25)8월 18일의 일이다.

이로부터 300년이 지난 임진년(1892)에 공의 의로운 충절을 기리기 위해 고종이 호조참의 (戶曹參議)를 증직하였다. 이 해에 자손들과 인근의 선비들이 모여 시신없이 공의 혼을 불러 초혼장(招魂葬)으로 이곳에 장사를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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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소: 대전광역시 서구 괴곡동 산 12-1

파평윤씨 서윤공파 고택

· 지정종목: 대전광역시 문화재자료 제 34호  · 지정일: 1992년 10월 28일

· 시대: 조선시대  · 면적: 1동/안채(155.2㎡), 행랑채- 정면7칸,측면 1칸


가수원을 지나 흑석동으로 가는 도로와 호남선철도가 만나는 건널목 직전 우측의 고리골 마을에 위치한다. 이 고택은 조선 인조대에 한성부 서윤을 지낸 윤흡의 장손자 윤섬때인 약 300여년전에 처음 지어진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건물의 배치는 ㄷ자형 평면으로 된 안채의 오른쪽 끝에 다시 ㄴ자형 행랑채를 붙여서 전체적으로는 튼 ㅁ자형의 평면으로 구성되었다. 안채에는 ‘영사당(永思堂)’ 이란 현판이 걸린 넓은 대청의 좌우편에 안방과 웃방, 부엌, 건넌방 등이 드려져 있다. 행랑채는 측면 1칸에 전체 7칸 규모이며 홑처마 팔작지붕으로 되어 있다. 대문이 있는 동측에는 담장이 있고, 남측의 정면에서는 담 없이 하방벽으로 담을 대신한다. 안마당쪽으로 1자 반 폭의 쪽마루가 길게 행랑채를 따라 놓이고 제일 마지막 칸은 아궁이 부엌으로 사용한다.

이 고택은 뒷날의 잦은 개보수로 본래보다 상당히 축소되어 비교적 안채만이 원형을 유지하고 있다. 실제 안채와 행랑채가 이어진 부분에 솟을대문을 두어 마치 집의 측면으로 출입을 하는 듯하다. 그러나 본래는 안채의 맞은편에 사랑채가 있었고 그 앞으로 삼문이 나있었다 한다.

고택 뒤로는 구봉산에서 비롯한 야산이 감싸고 있으며, 이 야산 기슭에 윤흡의 묘가 위치한다. 이곳은 본래 5형제 가운데 둘째 형인 윤황이 골라 잡은 자리였다. 그런데 넷째인 동생 윤흡이 먼저 세상을 떠나자 이곳에 묘를 썼다고 전한다. 묘에는 각각 한쌍씩의 동자석과 망주석, 문인석이 세워져 있었다. 그러나 현재의 동자석은 5년전 도굴과 함께 도난당하여 새로 제작한 것이다. 묘비는 우암 송시열이 비문을 짓고, 조카인 윤문거가 써서 1665년에 세웠다. 바로 아래에는 맏아들인 윤운거의 묘가 있다.

현재 고택에는 윤흡의 13대손인 윤여상(66세)이 살며 관리하고 있다. 고택 앞 마을 입구에는 1990년에 세운 ‘통정대부행한성부서윤파평윤공신도비(通政大夫行漢城府庶尹坡平尹公神道碑)’란 신도비가 있다. 1949년 정인보가 비문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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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소: 대전광역시 서구 괴곡동 고릿골길 86-11

류혁연의 묘

· 지정종목: 대전광역시 문화재자료 제 28호  · 지정일: 1991년 10월 24일

· 시대: 조선시대  · 크기: 1기/33.0㎡


조선 후기의 무신인 야당(野堂) 유혁연(1616∼1680)의 묘소이다. 충청남도 서산에서 태어난 그는 어려서부터 재주가 뛰어났으며, 대대로 무신의 집안에서 자랐다.

인조 22년(1644) 무과에 급제하여 벼슬길에 올라 삼도 수군통제사, 공조판서, 형조판서 등의 요직을 거치면서 어려운 일들을 잘 처리하였다. 예송(禮訟)으로 당쟁에 연루되어 관직이 삭탈되고, 숙종 16년(1680)에 경상도 영해로 유배되었다.

또한 무예에도 뛰어나 무신의 시험에서 줄곧 수석을 차지하였으며, 전략과 군사행정면에서 뛰어난 재능을 발휘하였다. 화차(火車)의 사용을 권장하고 병서의 연구를 강력하게 내세웠으며, 글씨와 죽화(竹畵)에도 뛰어났다.

대전광역시 서구 평촌동에 있는 묘소는 숙종 17년(1681)에 이장한 것이며, 1924년에는 신도비(神道碑:왕이나 고관 등의 평생 업적을 기리기 위해 무덤 근처 길가에 세우는 비)가 세워졌다. 묘비의 비문은 이의국이 짓고 9대 손인 군수 유석우가 글씨를 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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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소: 대전광역시 서구 평촌동 산 18